정선아리랑 : 산골 마을의 삶을 담은 서정적 소리
조선 중기의 인문 지리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정선 지역의 험준한 산세를 묘사하며 “무릇 나흘 동안 길을 걸었는데도 하늘과 해를 볼 수 없었다”라고 언급했다. 그만큼 정선은 가파른 산지로 둘러싸인 두메산골이었다. 이 첩첩 산골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고달프고 쓸쓸한 일상을 한 줄기 노래에 담아냈다. 바로 ‘정선아리랑’이다. 정선아리랑은 삶의 설움과 한(恨)을 담은 가락이자, 그들만의 독특한 해학과 풍자가 담긴 소리다.
1. 정선아리랑의 역사와 특징
정선아리랑은 발랄하고 경쾌한 느낌의 밀양 아리랑이나 신명과 장중함이 어우러진 진도 아리랑과는 확연히 다르다. 정선아리랑은 첩첩산중에서의 힘겨운 노동을 덜어주고, 잔치 자리에서는 덩실덩실 어깨춤과 어우러지며 흥을 돋우는 소리였다. 또한, 어린 손자·손녀를 재울 때는 자장가로, 연인 간에는 말 못 할 사랑의 메시지로도 사용되었다.
2. 정선아리랑의 방대한 가사
정선아리랑 가사는 수많은 세월을 거쳐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다듬어졌다. 현재까지 채록된 가사만 해도 2만여 수에 달하며, 이는 세계 단일 민요 중 가장 방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가락은 기교나 화려함보다는 소박함을 특징으로 하며, 가난 속에서도 낙천적으로 살아온 정선 사람들의 정서를 그대로 담아냈다. 이러한 정서들은 시대마다 다양한 빛깔로 쌓여 마치 삶의 퇴적층을 이루고 있다.
3. 삶과 밀접한 정선아리랑 가사의 소재
들리는 소리라고는 새소리와 바람 소리뿐이던 옛 시절, 정선아리랑은 사람들의 일상과 밀접한 주제를 다루며 발전해 왔다. 가사의 주요 내용은 남녀 간의 사랑과 그리움, 시집살이의 고됨과 서러움 등 사람들의 삶에서 비롯되었다. 혼자 부를 때는 구슬픈 느낌이 들 만큼 느린 소리로 부르지만, 여럿이 돌아가며 부를 때는 해학적이고 때로는 원색적인 가사를 자진 가락으로 흥에 겨워 부르기도 한다.
4. 후렴구와 노래판의 흐름
흔히 정선아리랑의 후렴으로 여겨지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는 일정하게 따라붙는 고정 후렴이 아니다. 소리를 주고받으며 부르던 중 가사가 막힐 경우, 노래의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 즉흥적으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라는 후렴을 불렀다. 이때는 모두가 함께 소리를 맞추며 하나의 화음을 이룬다.
5. 긴 아리랑과 엮음 아리랑
정선아리랑은 기본적으로 ‘긴아리랑’과 ‘엮음 아리랑’으로 구성되어 있다. ‘긴아리랑’은 가사를 느리고 길게 이어가는 형태이며, 이를 빠르게 부르는 ‘자진아리랑’으로 변주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본적인 정선아리랑의 구조는 느릿한 ‘긴아리랑’이다.
긴아리랑 가사에 다 담지 못하는 삶의 응어리와 해학은 ‘엮음 아리랑’으로 풀어냈다. 엮음 아리랑은 앞부분을 촘촘한 사설 형식으로 엮어 이야기하듯 부르고, 뒷부분에서는 다시 긴아리랑 가락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이러한 방식은 이야기의 흥미를 더하며, 청중과 함께 어우러지는 흥겨운 무대를 만든다. 마치 서양음악의 랩(Rap)처럼 율동적이고 빠른 리듬으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노래다.
6. ‘아라리’와 정선 사람들의 자부심
정선 사람들은 정선아리랑을 ‘아라리’라고 부르며, 다른 아리랑과 구분되는 독창적인 전통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이들이 ‘아라리’를 사랑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들의 소리가 다른 지역의 아리랑과 다르다는 자부심이 뚜렷했다. 강원도 여러 지역에서도 ‘아라리’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정선에서의 ‘아라리’는 시간이 흐르며 ‘정선아리랑’으로 더욱 정제되어 전해진다.
7. 정선아리랑과 자연의 조화
정선의 산과 강은 정선아리랑의 가락을 닮았다. 깊게 패인 노인들의 주름살처럼 촘촘한 산자락, 그리고 그 산 사이를 굽이굽이 흐르는 강줄기는 마치 ‘아라리’ 가락처럼 부드럽게 이어진다. 정선 땅에서는 누구나 소리꾼이 된다. 정선 사람들에게 정선아리랑은 삶 속에서 자연스레 터득하는 노래다. 심지어 아리랑의 뜻조차 모를 나이의 아이들도 ‘아라리’를 부르며 말을 배우기 시작한다.
8. 생활 속의 정선아리랑
정선 사람들은 정선아리랑을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마을 어귀에서 만난 할아버지나 할머니에게 아리랑을 청하면 처음에는 겸손하게 사양하지만, 막상 소리를 시작하면 구구절절 끝없이 이어지곤 한다. 이러한 정선아리랑의 전통은 지금까지도 지역사회 곳곳에서 전해지며, 사람들의 삶과 깊이 얽혀 있다.
결론
정선아리랑은 단순한 민요가 아닌, 첩첩 산골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담은 노래다. 고달픔과 설움을 노래하던 ‘아라리’ 가락은 세월이 흘러도 그 가치를 잃지 않으며, 정선 사람들의 자부심이자 정체성으로 남아 있다. 정선 땅에서 울려 퍼지는 정선아리랑은 오늘날에도 그 시절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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